2024.05.02 (목)
오늘이 1789년 프랑스 인권선언문을 발표한 날 입니다.
‘프랑스 인권선언문’은 국가재정 위기와 정책의 실패 그리고 흉년과 기근에도 불구하고 세금 압박에 반기를 든 민중봉기를 시작으로 자유·평등·박애를 부르짖으며 ‘인권선언문’을 발표한 ‘프랑스혁명의 상징’입니다.
혁명은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앙뚜와네트’를 단두대로 보낸 법조 출신 ‘로베스피에르가’ 오직 무죄와 사형의 극단적인 판결만 존재하는 공포정치를 하다 그 역시 반동으로 단두대로 사라졌고 지금의 ‘좌파·우파’의 산실이 된 긴 당파싸움 와중에 민주주의를 유럽에 전파하기 위해 전쟁에 나선 전쟁영웅 ‘나폴레옹’이 정권을 장악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초심은 사라지고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통령제’를 거쳐 ‘황제’라는 왕정으로 다시 돌아간 것이 프랑스 혁명의 역사입니다.
섬 출신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쟁에서 패하고 다시 섬으로 추방당해 섬에서 운명을 마쳤다는 이야기는 한 번쯤 들어 본 이야기일 겁니다.
18세기 일어난 ‘프랑스 혁명’은 국민이 주인이 되는 시대를 연 세계 최초 민주주의 혁명이라는 점에서 인권 역사의 중요한 사건입니다.
그리고 4.19, 6월 항쟁에도 많은 영향을 준 혁명입니다.
‘프랑스 혁명’에 관하여 공부하다 보면 그 당시 혁명의 역사가 지금의 현실과 너무도 닮은 꼴로 흘러가는 것 같아서 놀랍습니다.
‘루이 16세’와완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치와 재정 파탄에 이른 군주제에 반기를 든 것은 ‘박근혜 전대통령과 최순실’의 국정 농단에 의한 촛불 집회를 상기하게 하고, 법률가 ‘로베스피에르’의 공포 정치는 ‘적폐 청산과 개혁’을 앞세운 불통의 개헌 정국을 이끌어가는 현 정권을 연상케 하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우리는 ‘로페스피에르’도 단두대에서 사라져간 루이 16세와 수만 명의 반대파 인사들 처럼 같은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2020.08.26
편집인 김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