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경북 안동시 송현동 단칸방에서 A씨(46)는 이같은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아내(36)와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연락이 닿지 않은 것을 이상하게 여겨 찾아온 친구가 이날 오후 3시쯤 이들을 발견했을 때 방 안에는 반쯤 탄 연탄불이 있었다.
연탄불을 사이에 두고 평상복 차림으로 쓰러져 있던 이들의 주변에는 장문의 편지, 소주와 맥주가 각각 1병씩 놓여 있었다.
A씨는 태어날 때부터 왼쪽 팔이 펴지지 않아 사물을 잡을 수 없는 지체장애 3급이고, 아내는 정신지체 2급에 시각장애 1급의 중복 장애로 사물을 식별할 수 없었다.
직업 없이 두 딸과 함께 월 100만원도 되지 않는 기초생활수급자 생계비로 근근이 생활해왔지만 이웃들은 단란한 가정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부부가 남긴 유서의 내용에 따르면 사연은 이랬다.
지난해 9월 23일 아침 중학교 1학년이던 큰딸(15)과 초등학교 4학년이던 작은딸(12)이 학교에 간 뒤 돌아오지 않아 걱정하고 있던 중 오후 6시 45분 안동의 한 아동보호 기관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이들은 조사할 것이 있어 아이들을 보호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관 측과 옥신각신하던 A씨 부부는 답답한 마음에 경찰에 신고했지만 아이들을 보호하고 있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며칠후 A씨는 경찰서로부터 “조사할 것이 있으니 출두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A씨는 자신이 2012년부터 1년여에 걸쳐 큰딸을 모두 8차례에 걸쳐 성추행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상담 과정에서 큰딸만 성추행 피해를 밝혔으나 아동보호기관은 원스톱지원센터와 공조, 학교에 있던 작은 딸을 보호시설로 데려갔다.
부부는 숨질 때까지 5개월여간 딸들을 볼 수 없었다.
이후 검찰은 지난해 12월 말 A씨를 아동 및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A씨는 지난 1월과 2월에 한 번씩 법정에 섰지만 검찰의 공소 사실을 모두 부인했다.
검찰의 공소장에는 A씨가 2012년부터 2013년 9월 사이에 집이나 길거리에서 8차례에 걸쳐 큰딸의 가슴이나 엉덩이를 만진 것으로 기재됐으나 구체적인 범행 일시는 없었다.
재판부는 검찰에 공소 사실을 좀 더 구체화시켜 혐의를 입증할 것을 요구했다.
지난 20일 열린 3차 공판에는 두 딸이 법정에 섰다.
A씨와 대면을 하지는 않았지만 큰딸은 성추행 피해를 진술했고, 작은딸은 목격 사실을 진술했다.
이틀 뒤 부부는 “세상천지에 아이들을 상대로만 조사를 하다니 이런 법이 어디에 있습니까? 결백합니다. 혐의를 벗기 위해 저희 부부는 마지막 선택을 합니다”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부부의 시신은 사망 과정에 강압이 있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부검을 거친 뒤 A씨의 형 내외만 지켜보는 가운데 쓸쓸히 화장장으로 향했다.